중국 하면 만리장성이 떠오르는 것처럼
인도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하면
단연 타지마할이다.
그런데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
눈부신 흰색의 대리석 속 아라베스크 무늬와
유려한 선의 이국적인 돔 양식에만
있는 것이 아니다
그곳에는 황제이 사랑과 낭만,
그리고 비극이 서려있다.
무굴제국은 인도를 지배한
최후의 이슬람 왕조이다.
이 무굴제국의 전성기에
5대 황제 샤 자한은 세계의 용맹한 왕
이라는 뜻으로
1617년 데칸고원의 전투에서
승리하자 붙여진 별명이다.
마치 마하트마 간디에서 마하트마가
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라는
존칭인 것처럼말이다.
샤 자한은 15세 때
당시 14세이던 페르시아계
권력자 가문의 딸 뭄타즈 마할과 정혼하고
1612년 결혼한다.
그런데 특징적인 것은
이들이 이후19년간의 결혼생활을 하면서
14세이던 페르시아계 권력자 가문의
딸 뭄타즈 마할과 정혼하고
1612년 결혼한다.
그런데 특징적인 것은 이들이 이후
19년간의 결혼생활을 하면서
14명의 아이를 임신한다는 점이다.
무려14명이다.
상상이 가질 않는다.
영국이 전성기 때 해가지지 않는 나라였다면
몸타즈 마할은 배가 꺼지지 않는 결혼생활을 했던 것이다.
더구나 샤 자한은 황제며
무슬림이었기 때문에 여러 부인들이 더 있었다.
그런데도 뭄타즈 마할에 대한 사랑이
20년이 넘도록 각별했다는 것은
세계의 어떤 황제에게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다.
여기에 샤 자한은 죽을 때까지도
타지마할을 보면서
뭄타즈 마할을 그리워했다고 하니
황제의 전 생애가 오직
한 여인에게 묶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.
뭄타즈 마할을 최고의 미인이라기보다는
왕의 마음을 잘 아는 총명한 여성이었다.
이 점이 황제에게 많은 여성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
한 여성에게만 시선을 집중할 수 있었던
진정한 이유였으리라.
마치 아라비안나이트의 세헤라자데처럼
그녀에게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새로운이라는
매력이 있었던 것이다.
뭄타즈 마할은 황국의 보석이라는 뜻으로
샤 자한이 내려준 부인에 대한 찬사이다.
진정한 호아구그이 보석은 그렇게 세월에도 스러지지 않는
찬란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.
마할의 무덤이바라다보이는 붉은 성
무굴제국의 황위 계승은 장남에게 물려주는
것이 아니라 전공으 많이 세운
이들에게 돌아갔다.
그래서 샤 자한 역시 어린시절부터
정복 군주의 면모를 보인다.
이것은 성군의 자질 중 하나였지만
14번째 임신한 뭄타즈 마할을 대동하고 나간
데칸고원의 원정길에서는 부인을 잃는 비극의 결과는 낳고 만다.
임신한 여성에게 전쟁터, 그리고 그곳에서의
출산이란 무척 힘든 환경이었을 것이다.
사랑하는 만큰 죄의식도 강렬했던지
샤 자한은 이후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다가
결국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기까지 했다고 한다.
그리고는 죽은 아내의 부활을 꿈꾸며
1632년부터 1653년까지 총 22년간 제구그이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
만든 것이 바로
마랗의 무덤 즉 타지마할이다.
그러나 과도한 건축은 국가재증르 위태롭게 하였고
결국 샤 자한은 3남인 아우랑 제부에 의해
강 건넌로 타지마할이 바라다 보이는
븕은 성에 유페되고 만다.
보이지만 만져지지 않는 그곳이
뭄타즈 마할은 있었던 것이다.
권르이 인생이란 서글픈 것이다.
열넷의 자녀를 낳았지만
그 중 여럽을 어린 시절에 잃었고
부인은 열넷째 아이를 낳다가
죽는다.
또 남은 자식드도 아우랑제브와의 권력 투쟁에서
일부가 죽고
아우랑제브는 평생 자신이 유페한 아버지 샤 자한을
찾지 않았다.
그래도 샤 자한은 죽은 후에 뭄타지 마할의 곁에 묻혔으니
이것이 마지막 위안이라고 할 수 있을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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